– 청계천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10월 12일까지 무료 관람 가능
– ‘고바우 영감’ 김성환의 청계천풍속화를통해1950~70년대 청계천 생활상 조명
–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김성환 화백작품도함께공개하여다양한볼거리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최병구) 분관 청계천박물관(관장 허대영)은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 《청계천의 낮과 밤》을 10월 12일(일)까지
청계천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 이번 전시는 네 컷시사만화‘고바우 영감’으로 잘 알려진 김성환 화백이
그린, 1950~70년대 청계천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던 서민들의
삶을 담은 풍속화를 한자리에 모아 소개한다.
□ 전시는 그림의 배경이 된 6·25전쟁 이후 청계천 판자촌의 형성 과정과
이후의 변화를 소개하고, 김성환이 그린 청계천 풍속화를 통해 청계천
모습과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판잣집에 석양이 비치면 이 무질서하고 궁핍한 동네도
금빛으로 빛나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 속에 꿈틀거리는 인간 군상들의 약동하는 삶의 의지와 희망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_ 김성환
“전, 서민들의 삶이 진짜 세상과 삶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그림을 통해 그들의 일상을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_ 김성환
□김성환은2000년시사만화‘고바우영감’연재를끝마친후,서민들의
생활모습을담은풍속화를그리며화가로서활동을왕성하게이어갔다.
급변하는세태속에서역사의뒤안길로사라져가는그시절의모습
을남기는것이자신의숙제라생각했다.
○그가2003년부터2010년까지그린풍속화100여점은1950~70년대
부산과대구의판자촌을비롯하여청계천,신림동,아현동,북촌,청량리등
서울의여러지역을기록하고있다.
□특히,청계천판자촌그림들은종로3가부터동대문,신설동까지상류에서
하류에이르는천변생활상을상세하게보여주고있다.또한낮에서
밤으로,여름에서겨울로,시간의흐름에따라변하는풍경과생활감을
살펴볼수있다.
○ 김성환의 그림은 사진과는 달리 따뜻한 색감, 서정적인 분위기, 해학적인
표현이 가득하다. 하지만 판잣집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 사람들
의 빠듯한 일상과 삶의 그늘까지 한 편의 세밀한 기록화처럼 빼곡히 그리
고 있다.
□ 이번 전시에서는〈청계천의 낮〉,〈청계천의 밤〉등 원화 6점과 판화
4점을 비롯하여 20여 점의 청계천 관련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림 속
에는 그의 대표작인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의 주인공인 ‘고바우’가 그
려져 있는데, 숨어 있는 ‘고바우’를 찾아보는 관람의 재미도 선사한다.
□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만화집 「카리카츄아*와 원화 서울
12경」 및 만화 캐릭터 작품도 함께 소개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 카리카츄아 : 캐리커처(caricature)를 옮긴 과거 표기로, 출판 당시 사용된 표기를 그대로 따름.
김성환(金星煥 1932.10. 8. – 2019. 9. 8.)
1949년 경복중학교(현 경복고등학교) 재학 중 18세의 나이로 『연합신문』에 시사만화 「멍텅구리」를 연재하며 만화가로 데뷔했다. 6·25전쟁 당시에는 국방부 정훈국에서 복무하며 전쟁의 실상을 그림으로 기록하였다.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 네 컷 만화 ‘고바우 영감’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서민적 정서와 촌철살인의 풍자를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조선일보』를 거쳐 2000년 『문화일보』에서 연재를 마치기까지 총 14,139회를 기록하며 우리나라 최장수 시사만화로 자리 잡았다. 2001년 한국 기네스기록에 오르기도 했으며, 한국 현대사 연구를 위한 학술적·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바우 영감’ 외에도 다양한 만화를 그렸으며, 화가이자 수필가로서도 활동했다. 만화 『꺼꾸리군과 장다리군』 등은 큰 인기를 끌며 영화로 제작되었고, 『소케트군』을 통해 소파상을 수상하기
도 했다. 『고바우 인간동물원』, 『고바우와 함께 산 반생』, 『고바우 방랑기』 등의 수필집을 출간했으며, 1950~70년대 판자촌과 생활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주제의 회화작품으로 14번의 개인전을개최하였다.
□ 6·25전쟁 이후 서울에서 전후 복구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지방민과
월남민은 서울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1960년대 경제 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전쟁 직후 124만 명이던 서울의 인구는 1970년에는 543만
명으로 폭증했다. 서울로 유입된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시 외곽의 구릉
이나 하천변에 판잣집을 짓고 정착했다. 이 무렵 청계천변은 판자촌
밀집 지역을 이루었다.
○ 청계천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판자촌, 옆과 위 아래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
안에서 판자촌 사람들은 ‘잘 살고 싶다’는 미래를 꿈꾸었다. 판자촌에는 공동
생활을 위한 공동수도와 공동변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함께 사용하고 나누는
일이 불편하고 어려웠지만 서로부대끼고의지하며일상을이어갔다.
□ 1958년 광교에서부터 시작된 청계천 복개 공사로 청계천 판자촌은
서서히 시 외곽으로 밀려나갔다. 1977년 복개 공사가 완료됨에 따라
청계천 주변 판자촌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새 길과 고가도
로가 들어섰다. 서울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었던 청계천은 복개를
통해 우리나라 근대화·산업화의 상징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 1960년대 도시화 물결에 휩쓸려 청계천변으로 흘러 들어왔던 사람들은 1970년대에는다시재개발과도시정비에 떠밀려 당시 서울의 외곽지대인 봉천동, 상계동, 광주 대단지등지로흩어졌다. 청계천은 도시정비의 대상이자 동시에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압축 성장의 시행착오를 고스란히 겪어내야했다.
□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우리가 지금의 청계천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어려운 청계천판자촌시대를훌륭하게극복했기때문이며, 이 전시를 통해 김성환 화백의 말처럼 가끔은 마음을 가다듬고 과거를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청계천박물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며 준비한 이번 특별전은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김성환 화백의 청계천 그림들을 소개하는
뜻깊은 자리”라며, 앞으로도 청계천을 중심으로 서울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이 되겠다”고 말했다.
□ 전시는무료로관람할수있으며, 관람시간은평일과토·일·공휴일 오전 9
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되, 공휴일과 겹칠 경우
정상 운영한다.
○ 자세한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https://museum.seoul.go.kr)과
청계천박물관 누리집(http://museum.seoul.go.kr/cgcm)을 통해 확인
할수있으며, 문의는02-2286-3410으로 가능하다.
출처 : 서울시청 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박물관